관원생 | 학부모
 
 
 
HOME > 학부모자료실 > 학부모님께 드리는 글
 
 
딸애의 품띠
2007-02-27


깊은 밤중, 남들이 다 자는 시간에 깨어 있다 보면 종종 밤거리에서 들려 오는 청년들의 힘 자랑 소리에 일손을 멈추게 된다. 생각대로 실마리가 술술 풀려 나오는 밤일 경우에는 밤거리의 소음도 아랑곳하지 않고 글쓰기에 열중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이면 밖의 풍경을 상세히 알아보고 싶어 슬쩍 창문을 열기도 한다.

힘 자랑이라니 무슨 씨름판 같은 것을 연상할지도 모르겠으나 심야에 그런 일이 있을 턱이 없고 쉽게 말하면 패싸움, 혹은 세력 다툼이 대부분인 것들이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벌어지는 주먹 다툼에는 언변 좋은 것이나 지성적인 사고방식이 소용없는 법이다. 완력이 세고 동작이 민첩하여 한 번이라도 더 주먹을 날리는 쪽이 밤거리의 승자이다. 그런 싸움들은 대개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기 마련이고 당한 쪽은 신음 소리와 함께 쓰라린 굴욕감만 얻어 가질 뿐이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하나뿐인 내 아이는 태권도 도장에 다니고 있는 중이다. 힘 자랑에서 지는 쪽 아들을 두게 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어머니들이 대개 태권도장을 선호한다는데 나는 결코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자신있게, 당당히 힘 주어 말할 수 있는 까닭은 명료하다. 내 아이는 아들이 아니요, 인형놀이에 소꿉놀음만을 즐기는 딸인 까닭이다.

그 딸아이가 얼마전 태극 8장까지를 완전히 소화하여 1품 심사를 받았다. 성인으로 치면 1단 심사인데 15세까지는 “품”이라 부르며 띠의 색깔도 검정과 빨강이 반반이다. 이제 여섯 살짜리가, 그것도 여자애가 하면 얼마나 하랴 했는데 일년여의 수련을 받는 동안 아이는 눈에 띄게 당당해지고 절도있게 행동하였다. 태권도의 품새도 처음의 쭈뼜거림에서 벗어나 쭉쭉 뻗어 가고 매워졌다.

그간의 띠 심사는 줄곧 도장에서만 받았었지만 품 심사는 달랐다. 국기원에서 파견나온 심사위원들이 인근 초등학교 강당에서 아이들 하나하나를 면밀히 주목하였다. 떨어진들 어떠랴, 하는 심정이었는데도 아이나 나나 그렇게도 마음이 초조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딸애는 도장에서의 최종 연습 도중 뺨을 다쳐서 약간 부어 있는 상태였다. 겨루기 연습이었는데 상대가 된 남자애가 어찌나 사정없이 발차기를 해 대는지 얼굴을 여러 차례 채고 말았다. 그래도 눈물을 보이면 감점이라는 사범의 엄중한 호령 때문에 딸애는 이를 악물고만 있었다. 두들겨 맞는 딸애를 보자니 나 역시 괴로웠다. 여자애인데도 사정을 봐주지 않는 상대 녀석이 미워지기까지 하는 것을 느끼고 나는 쓴웃음을 지었었다. 여자니까, 약하니까, 싸움을 못 하니까, 등등의 이유로 세상살이에서 불평등한 대접을 받지 말라는 이유로 딸애를 태권도 도장에 밀어넣은 나였다.

어쨌거나 1품 심사는 무사히 끝났다. 딸애는 품새 심사에서는 거의 완벽했고, 겨루기에서는 뒤차기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해 또 서너 번의 위기를 맞았었다. 그랬지만 악착같이 덤벼서 제법 세련된 발차기 솜씨를 과시했고 구령 소리 등이 봐줄 만하였다. 다른 남자애들에 비해 결코 뒤질만한 실력은 아니었으므로 딸애 순서를 끝낸 내 마음은 한결 느긋해졌고 비로소 강당 내의 다른 애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강당에서 심사를 받고 있는 학생들 중에는 덩치가 크고 우락부락해 보이는 중고생들도 있었다. 기합도 우렁찼고 겨루기에서는 퍽퍽 소리가 어찌나 큰 지 보기에도 아슬아슬할 지경이었다. 그 모양을 보자니 강당 바깥에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었던 이유를 알 듯도 싶었다. 순서를 마치고 들어오는 학생들 중에는 코피를 흘리는 애도 있고 눈두덩이 부어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모두들 씩씩하고 활기찬 표정들이었다. 한 바탕 겨루기를 끝내고 마악 자리로 돌아오던 어떤 고등학생이 도복을 입은 딸애의 모습이 귀엽다고 환하게 웃었다. 웃는 모습이 온화하고 밝았다. 무서운 속도의 발차기와 엄청난 힘의 내지르기 솜씨를 지닌 태권도 유단자의 웃음은 그런 것인지도 몰랐다.

아니, 힘 있는 자, 자신만만한 자,의 웃음은 온화하고 부드러운 것이 맞을 것이다. 밤거리의 어둠을 틈타서 마음껏 폭력을 휘두르고 사라지는 자들의 검은 웃음은 그런 모양이 아닐 것이다. 오늘의 현실 속에서 이성이나 합리적인 사고가 결여된 그런 폭력이 횡행하고 있음을 생각할 때 태권도 심사장에서 만난 웃음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딸애를 태권도 도장에 입관시키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다. 온유와 비굴의 차이는 결국 힘의 강약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밀이다. 힘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온유할 수 있다. 하지만 힘없는 자의 온유함이란 기껏해야 비굴함의 속임수에 불과할 뿐일 것이다. 물론 강한 힘을 어떻게 써야 하는 지를 잘 알고 있는 경우에 한해서이다. 비굴함을 넘어섰다고는 하나 방약무인해지는 힘의 과시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 태권도를 비롯한 모든 무예는 정의를 목표로 정진하는 것이 진리로 되어 있다. 그래서 시합이나 겨루기에도 엄격한 규율이 있고 무예의 수련 외에 정신 교육도 독특하게 병행하는 게 보통이다. 이 모든 게 다 진실로 온유한 사람이 되기 위해 서라고나 할까.

그리고 얼마 후, 딸애는 자격증에 앞서 품띠부터 받았다. 합격을 확인해 주는 첫 번째 징표인 것이다. 붉은 색, 검은 색이 반반인 품띠에는 아이의 이름이 새겨 있다. 이제 열다섯 살이 되면 온전히 검은 띠를 받게 될 것이고 그 때쯤이면 엄마가 왜 태권도를 배우게 했는지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온유함과 비굴함이 왜 다른지, 밝은 웃음과 검은 웃음이 어떻게 차이 나는지 눈치챌는지도 모를 일이다.

조간이나 석간이나, 오늘 역시도 신문의 사회면에는 어김없이 방약무도한 폭력의 결과가 기사화되어 세인의 가슴을 서늘하게 하고 있다. 힘센 사람은 많아도 온유하고 밝으면서 당당하게 강한 사람은 드물다. 일당백이라고 하던가, 혼자서 얼마든지 때려 눕힐 수 있는 엄청난 힘만 있다 하여 자만할 일이 아니다. 힘없는 자를 때려 눕히는 주먹은 부끄러운 주먹이다. 부끄럽지 않은 주먹은 때려 눕히는게 아니라 누운 자를 일으켜 주는 주먹이다.

딸애의 품띠를 바라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도 해본다. 물리적인 힘뿐만이 아니라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정신적인 폭력 또한 마땅히 온유함의 길을 가야 한다고. 하기야 마땅한 진리가 어디 마땅하게만 되어가는 세상이던가……….

-양귀자 수필집 <따뜻한 내집 창밖에서 누군가 울고 있다>에서-


  


5의 글 ( 1 / 1 ) 학부모님께 드리는 글입니다.
번호 화일   제목 발송일
5 생활습관 5가지만 지키면 우리집 아이도 키 '무럭무럭'07-04-05
4 강력한 부모07-02-27
3[선택] 딸애의 품띠07-02-27
2 안일태권도체육관 홈페이지를 개편하였습니다.05-09-08
1 지역품앗이(학부모님 업소 소개) 이용 안내05-08-29
[1]
 
 
 
 
   
대구광역시 동구 율하동 894번지 / ☎TEL: 053-964-6405 안일태권도체육관